중국 암호화폐 전면 퇴출 동인 과정 그리고 지정학적 파장

중국 암호화폐 전면 퇴출 동인 과정 그리고 지정학적 파장

1. 붉은 장벽과 디지털 골드러시

중국의 암호화폐 전면 퇴출 조치는 21세기 디지털 경제 시대에 국가 권력이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과 어떻게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 결정은 단순한 금융 시장 규제를 넘어, 국가 주권, 사회 안정, 기술 패권, 그리고 디지털 미래의 통제권을 둘러싼 거대한 서사의 일부를 형성한다. 중국 공산당이 견지해 온 중앙집권적 국가 통제 시스템과,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본질적 속성인 ‘탈중앙화(Decentralization)’ 사이에는 근본적인 이념적, 구조적 간극이 존재한다.1 본 보고서는 이 거대한 충돌의 전개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추적하고, 그 이면에 자리한 다층적 동인을 심층 분석하며, 나아가 이 결정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지형과 지정학적 질서에 미친 파장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중국의 암호화폐 금지는 표면적으로는 금융 리스크 관리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그 본질은 ’데이터 주권’과 ’통화 주권’을 사수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국경을 초월하여 익명으로 가치를 이전할 수 있는 민간 암호화폐는 중국의 엄격한 자본 통제 시스템과 국가 주도의 통화 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되었다.1 중국은 거대한 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작은 구멍을 용납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시장 자체를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로 귀결되었다.1 본 보고서는 제2장에서 규제의 연대기를 상세히 기술하고, 제3장에서는 이러한 결정을 추동한 복합적인 동인들을 분석한다. 제4장과 제5장에서는 금지 조치가 야기한 국제적 파급 효과와 금지 이후의 역설적 상황들을 탐구하며, 제6장에서는 최근 감지되는 정책 선회의 가능성과 미래 시나리오를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제7장 결론에서는 이 모든 분석을 종합하여 중국이 직면한 ‘통제와 혁신’ 사이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조명한다.

2. 중국 암호화폐 규제의 연대기: 점진적 옥죄기에서 전면 퇴출까지

중국의 암호화폐 규제는 단발적인 조치가 아니라, 수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강도를 높여온 체계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초기 경고 단계에서부터 시장의 핵심 기능을 마비시키는 결정적 조치를 거쳐, 모든 관련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최종 단계에 이르기까지, 중국 당국은 치밀하고 일관된 정책적 흐름을 보여주었다.

2.1 초기 경고와 시장 과열 (2013-2016)

2011년 6월, 중국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BTC China(比特币中国)가 문을 연 이후, Huobi, OKCoin 등 후발 주자들이 등장하며 중국은 초기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1 그러나 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자 당국의 첫 경고가 나왔다. 2013년, 중국인민은행 등 5개 부처는 금융기관 및 결제 기관이 비트코인 관련 업무를 취급하는 것을 금지하는 통지를 발표하며 제도권 금융 시스템과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책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했다. 2014년 4월, 저우샤오촨 당시 인민은행 총재는 암호화폐를 일종의 자산으로 인정하며 정부가 이를 금지할 계획은 없다고 밝히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6 이 시기는 당국이 암호화폐의 잠재력과 리스크를 동시에 탐색하던 과도기로 평가할 수 있다.

2.2 1차 철퇴: ICO 금지와 거래소 폐쇄 (2017)

2017년은 중국 암호화폐 정책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상반기 들어 새로운 자금 조달 방식인 암호화폐공개(ICO)가 광풍을 일으키며 각종 불법 금융 활동과 사기가 만연했다.1 이에 중국 당국은 칼을 빼 들었다. 2017년 9월, 인민은행을 포함한 7개 관련 부처는 ’암호화폐 발행융자 리스크 방지에 관한 공고’를 발표하며 모든 ICO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1 더 나아가 이 공고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법정화폐와 암호화폐 간의 교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8 이는 사실상 중국 내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사형 선고와 같았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압력을 견디지 못한 BTC China, Huobi, OKCoin 등 주요 거래소들은 2017년 10월을 전후하여 중국 내 거래소 운영을 중단하고 폐쇄하거나 해외로 이전해야만 했다.1 이 조치로 한때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중국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9

2.3 숨 고르기와 지하화 (2018-2020)

공식적인 거래소가 사라진 이후, 중국 내 암호화폐 거래는 지하로 숨어들었다. 개인 간(P2P) 거래나 장외거래(OTC) 방식이 암암리에 성행했으며, 이는 당국의 완전한 통제를 어렵게 만들었다.5 중국 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만리방화벽을 통해 해외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는 등 규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6 그러나 이 시기 암호화폐 채굴 산업에 대해서는 다소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저렴한 전기 요금을 앞세운 네이멍구, 쓰촨 등 일부 지방정부는 ’빅데이터 센터’로 위장한 채굴장을 암묵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11 이처럼 거래는 억제하되 채굴은 일부 용인하는 듯한 ’회색지대’가 존재했던 시기였으나, 이는 더 강력한 규제를 위한 숨 고르기에 불과했다.

2.4 최후통첩: 채굴 및 거래 활동의 전면적 불법화 (2021)

2021년, 중국 당국은 암호화폐의 뿌리를 뽑기 위한 최종 조치를 단행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2021년 5월 21일, 류허 부총리가 주재한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 처음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뿐만 아니라 ‘채굴’ 활동까지 ’타격’하겠다는 방침이 공식화되었다.12

이후 후속 조치는 신속하고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다. 각 지방정부는 관내 채굴장을 전면 폐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한때 세계 해시레이트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중국의 채굴 산업은 사실상 붕괴했다.10 그리고 2021년 9월 24일, 인민은행 등 10개 부처는 ’가상화폐 거래 투기 리스크 방지에 관한 추가 통지’를 발표하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 통지는 암호화폐와 관련된 모든 업무 활동, 즉 법정화폐와의 교환, 교환 서비스 제공, 정보 중개, 파생상품 거래 등을 ’불법 금융 활동’으로 명확히 규정했다.9 또한, 해외 거래소가 인터넷을 통해 중국 거주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불법으로 간주하고 엄격히 단속할 것임을 천명했다.14

이 조치로 인해 중국 내에서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것 자체는 금지되지 않았으나, 이를 이용한 거래, 교환, 채굴 등 사실상 모든 종류의 경제 활동이 불법화되었다.10 2013년부터 시작된 기나긴 규제의 여정은 암호화폐 산업의 전면적 퇴출이라는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이러한 규제의 흐름은 중국의 국가 주도 디지털 화폐인 ‘디지털 위안화(e-CNY)’ 개발 계획과 맞물려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시장 대응 이상의 전략적 의도를 내포한다. 중국은 2014년부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을 시작했으며, 2017년 7월 인민은행 산하에 ’디지털화폐연구소’를 설립했다.3 불과 두 달 뒤인 2017년 9월, ICO와 거래소에 대한 1차 대규모 규제가 단행된 것은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 또한, e-CNY의 대규모 공개 테스트가 시작된 2020년 이후, 그리고 공식 출시를 목전에 둔 2021년에 민간 암호화폐에 대한 최종적이고 전면적인 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3 관영 매체인 경제참고보가 “암호화폐 불법 채굴 및 거래 활동 타격 강도를 높여 디지털 위안화 정식 도입에 더욱 양호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민간 암호화폐 제거가 국가 주도 디지털 화폐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계획된 수순이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3

[표 1] 중국 암호화폐 규제 주요 연혁

시기발표 기관주요 규제 내용규제 대상핵심 근거(명분)시장 및 산업 영향
2013년 12월인민은행 등 5개 부처금융기관 및 결제 기관의 비트코인 관련 업무 취급 금지금융기관금융 리스크 방지제도권 금융과의 연계 차단
2017년 9월인민은행 등 7개 부처ICO 전면 금지, 암호화폐와 법정화폐 간 교환 서비스 금지ICO, 암호화폐 거래소불법 자금 모집, 금융 사기 방지중국 내 주요 거래소 폐쇄 및 해외 이전
2018년-2020년인터넷금융감독기구 등해외 암호화폐 거래 사이트 접속 차단, 채굴 ‘질서 있는 퇴장’ 요구해외 거래소, 채굴업자자본 유출 방지, 과도한 전력 소비거래의 음성화, 채굴 산업 위축 시작
2021년 5월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 활동 ‘타격’ 방침 공식화채굴 및 거래 활동 전반금융 안정 유지대규모 채굴장 폐쇄 시작, 채굴 산업 붕괴
2021년 9월인민은행 등 10개 부처모든 암호화폐 관련 업무 활동을 ’불법 금융 활동’으로 규정암호화폐 관련 모든 사업금융 질서 교란, 위법 범죄 자금원 차단중국 내 암호화폐 산업 전면 퇴출

3. 대륙의 결단: 암호화폐 퇴출의 다층적 동인 분석

중국이 암호화폐 산업을 전면 퇴출하기로 한 결정은 단일한 요인이 아닌, 금융, 사회, 환경, 기술, 그리고 이념에 걸친 다층적인 동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는 국가의 핵심 이익이 동시다발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전방위적 방어(Full-Spectrum Defense)’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3.1 금융 주권 수호: 자본 유출 통제와 시스템 리스크 방어

중국 경제 시스템의 근간 중 하나는 엄격한 자본 통제이다. 당국은 위안화 환율을 관리하고 외부 충격으로부터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 간 자금 이동을 철저히 통제해왔다.16 그러나 탈중앙화되고 익명성을 가진 암호화폐는 이러한 ’붉은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잠재적 통로를 제공했다.1 특히 2017년 1월,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3조 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등 자본 유출 압력이 거세던 시기에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1 당국은 암호화폐가 통제 불가능한 자본 유출의 수단이 되어 국가 금융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18

동시에 암호화폐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그 자체로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 요인이었다. 암호화폐 광풍은 대규모 투기를 유발했고, 이는 막대한 개인 투자자 손실과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3 중국 정부는 이러한 투기 열풍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자산 거품을 형성하고, 이것이 붕괴될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시스템 리스크’를 심각하게 우려했다.10 따라서 암호화폐 퇴출은 금융 주권을 수호하고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선제적 방어 조치였다.

3.2 사회 안정 유지: 불법 자금 세탁 및 금융 범죄와의 전쟁

암호화폐의 익명성과 초국경성은 범죄 조직에게 매력적인 자금 세탁 도구를 제공했다. 중국 당국은 암호화폐가 도박, 불법 자금 모집, 사기, 다단계 판매, 자금 세탁 등 각종 위법 범죄 활동을 증식시키는 온상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1 실제로 중국 공안은 암호화폐를 이용해 수조 원대 자금을 세탁한 조직을 대거 검거하고, 이른바 ’지하 은행’들을 폐쇄하는 등 강력한 단속을 벌여왔다.9

이 문제는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미국 재무부와 블록체인 분석 업체들은 중국의 범죄 조직들이 펜타닐과 같은 마약 거래로 벌어들인 불법 수익금을 암호화폐를 통해 세탁하고 있다고 지목했다.23 이러한 불법 활동은 중국의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안정을 저해하는 심각한 위협 요소였다. 이에 중국은 2024년, 공식 형법 해석에 ’가상자산’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 세탁에 대한 처벌 의지를 법적으로 명확히 했다.26 이는 암호화폐 퇴출이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강력한 사법적 조치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3.3 환경 정책의 명분: 탄소 중립 목표와 에너지 안보

암호화폐 금지의 또 다른 강력한 명분은 환경 문제였다. 특히 작업증명(PoW) 합의 알고리즘에 기반한 비트코인 채굴은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컴퓨팅 파워, 즉 전력을 소모한다.11 금지 조치 이전, 중국은 저렴한 전기 요금을 바탕으로 전 세계 비트코인 채굴의 65%에서 79%에 달하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었다.12

이러한 대규모 채굴 활동은 중국의 에너지 수급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심각한 탄소 배출 문제를 야기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관련 에너지 소비는 2024년에 296.59 TWh로 정점을 찍고, 1억 3천만 미터톤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할 것으로 예측되었다.30 이는 체코나 카타르 같은 국가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넘어서는 규모이다.30 시진핑 주석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정점을 찍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공약한 상황에서, 비트코인 채굴 산업은 국가의 거시적인 환경 정책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좌초 자산’이었다.27 따라서 채굴 금지는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고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3.4 권력 공고화: 디지털 위안화(e-CNY) 패권과 기술 통제

앞서 언급했듯이, 민간 암호화폐 퇴출은 국가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디지털 위안화(e-CNY)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한 필수적인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3 중국 당국은 비트코인과 같은 민간 암호화폐를 통화 시스템을 교란하는 ’허위유사 화폐’로 규정하고, 그 자리를 국가가 보증하고 통제하는 e-CNY로 대체하고자 했다.12

e-CNY는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중국 공산당의 통치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모든 거래 기록이 중앙은행 서버에 남기 때문에 자금세탁, 탈세, 부패 등 불법적인 자금 흐름을 원천적으로 추적하고 차단할 수 있다.32 또한, 중앙은행이 직접 개인과 기업의 ’디지털 지갑’에 접근할 수 있게 됨으로써 통화 정책의 전달 경로가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그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장기적으로는 e-CNY를 일대일로 프로젝트 등에 활용하여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화하고, 이를 통해 미국 달러 패권에 도전하려는 거시적 전략의 핵심축을 담당한다.16 이러한 원대한 계획 속에서, 통제 불가능한 민간 암호화폐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경쟁자이자 장애물이었다.3

3.5 이념적 충돌: ’탈중앙화’에 대한 공산당의 근원적 경계

궁극적으로 암호화폐 퇴출의 배경에는 경제적, 기술적 문제를 넘어서는 깊은 이념적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암호화폐의 핵심 철학인 ’탈중앙화’는 정부나 중앙은행과 같은 중앙 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의 신뢰를 통해 가치를 교환하는 시스템을 지향한다.1 이는 모든 권력이 당으로 집중되는 중국의 중앙집권적 통치 이념과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 수십 년간 사회 전반에 걸쳐 완벽에 가까운 통제망을 구축해왔다. 인터넷 검열을 통해 톈안먼 사건과 같은 민감한 정보의 유통을 차단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1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익명의 가치 저장 및 교환 수단이 확산되는 것은, 당국이 공들여 쌓아 올린 통제 시스템에 예측 불가능한 ’구멍’을 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커다란 둑이 무너지는 것은 작은 구멍에서 비롯된다’는 경계심이 작동한 것이다.1 따라서 암호화폐 퇴출은 금융 안정을 넘어, 공산당의 절대적 통치 권력을 디지털 시대에도 공고히 유지하려는 정치적 결단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동인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통합된 국가 전략을 형성했다. 자본 유출(금융)과 자금 세탁(사회)은 암호화폐의 동일한 속성에서 비롯되었고, 에너지 과소비(환경) 문제는 채굴 산업을 제거할 명분을 제공하여 금융 및 사회 통제 목표 달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중국의 최종적인 해결책이자 대안이 바로 e-CNY였다. e-CNY는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자본 흐름을 추적하고, 불법 거래를 차단하며, 에너지 효율적이고, 모든 거래 기록을 국가가 관리할 수 있게 한다. 결국 암호화폐 퇴출은 단순히 문제를 제거하는 소극적 조치를 넘어, e-CNY라는 새로운 국가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적극적인 공간 확보 전략이었던 셈이다.

4. 규제의 나비효과: 중국발 금지 조치가 세계 시장에 미친 파장

중국의 암호화폐 전면 금지라는 강력한 조치는 중국 내 시장을 소멸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전 세계 디지털 자산 시장의 지형과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거대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해시레이트의 대이동부터 각국 규제 정책의 변화까지, 그 파장은 광범위하고 복합적이었다.

4.1 글로벌 채굴 지형의 재편: 해시레이트의 대이동과 그 결과

2021년 중국의 채굴 금지 조치가 가져온 가장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변화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컴퓨팅 파워, 즉 해시레이트(Hashrate)의 전 지구적 재분배였다. 금지 이전, 중국은 전 세계 해시레이트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채굴 중심지였다.12 그러나 금지령이 내려지자, 수많은 채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값비싼 채굴 장비를 들고 국경을 넘는 ’대이주(Great Mining Migration)’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10

이들의 새로운 정착지는 주로 저렴한 전력과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규제 환경을 갖춘 국가들이었다. 특히 미국(텍사스, 조지아 등),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이 주요 수혜국으로 부상했다.10 이 현상은 두 가지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첫째,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탈중앙성이 강화되었다. 특정 국가(중국)에 과도하게 집중되었던 해시레이트가 전 세계 여러 국가로 분산되면서, 단일 정부의 정책이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게 완화된 것이다. 이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역으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둘째, 네트워크의 환경적 영향에 복합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 채굴자들은 우기(雨期)에는 쓰촨성 등지의 풍부하고 저렴한 수력 발전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35 그러나 이들이 이주한 카자흐스탄이나 미국의 일부 지역은 석탄 및 천연가스 발전 의존도가 높아, 이주 초기 네트워크 전체의 탄소 발자국이 일시적으로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36 캠브리지 대안금융센터(CCAF)의 연구에 따르면, 중국의 단속 이후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은 2021년 봄 41.6%에서 25.1%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36

4.2 시장의 변동성과 디커플링 가능성 분석

과거 중국 시장은 글로벌 암호화폐 가격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때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이루어졌으며, 중국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였다.9 따라서 중국 당국의 규제 발표는 시장에 즉각적인 충격파를 던졌다. 2017년 거래소 폐쇄나 2021년 전면 금지 조치가 발표될 때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암호화폐 가격은 단기적으로 급락하는 패턴을 보였다.14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퇴출은 시장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규제 이후 중국의 비트코인 거래량 비중은 10% 미만으로 급감했으며, 시장의 중심은 북미와 유럽으로 완전히 이동했다.9 중국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적 수요가 차지하던 자리를 서구의 기관 투자자들이 채우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점차 중국발 정치적 리스크로부터 ’디커플링(탈동조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물론 미중 갈등과 같은 거시 경제 변수는 여전히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만 38, 과거처럼 중국 내부의 특정 규제 하나가 시장 전체를 패닉에 빠뜨리는 현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4.3 각국 규제 당국에 미친 영향과 정책적 함의

중국의 극단적인 전면 금지 조치는 전 세계 규제 당국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이는 각국의 암호화폐 규제 논의에 있어 하나의 강력한 참조점이자 분기점으로 작용했다.10

일부 국가들은 중국의 사례를 암호화폐가 가진 잠재적 위험, 특히 금융 안정 위협과 불법 자금 세탁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중국과 유사하게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엄격한 통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이를 기회로 인식했다.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와 같은 국가들은 중국에서 이탈한 암호화폐 자본, 기업, 그리고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해 보다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이들은 암호화폐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보고, 혁신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균형 잡힌 접근법을 채택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금지 조치는 글로벌 암호화폐 규제 환경의 통일성을 저해하고 각국의 정책적 입장이 더욱 갈리는 ‘분절화(fragmentation)’ 현상을 심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37

특히 중국의 결정은 의도치 않게 미국의 디지털 자산 패권을 강화하는 전략적 결과를 낳았다. 중국이 스스로 포기한 채굴 산업의 주도권은 막대한 자본과 안정적인 법률 시스템, 그리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갖춘 미국으로 상당 부분 이전되었다.39 이로 인해 비트코인 해시레이트의 최대 점유 국가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으며, 이는 비트코인 네트워크 운영에 대한 미국의 잠재적 영향력이 증대되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는 미국의 암호화폐 관련 산업 생태계(채굴, 거래, 커스터디, 금융 서비스)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채굴 산업의 패권까지 가져온 것은 미국의 금융 패권을 디지털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결국 중국의 규제는 자국 내 리스크를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장기적인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구도에서는 최대 경쟁국에게 디지털 자산 분야의 전략적 우위를 넘겨준 예상 밖의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5. 금지 이후의 역설: 그림자 속의 시장과 홍콩의 부상

중국 정부의 전면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암호화폐는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규제의 그림자 속에서 더욱 은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와 동시에 중국 본토와는 대조적으로 홍콩이 글로벌 암호화폐 허브로 급부상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중국의 복잡하고 이중적인 전략을 보여준다.

5.1 끈질긴 생명력: 중국 내 암호화폐 지하 시장 실태 분석

중국 당국이 암호화폐 관련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와 채굴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았다.9 규제의 그물망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우회 경로가 생겨나며 견고한 지하 시장이 형성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만리방화벽’을 우회하여 바이낸스(Binance), OKEx와 같은 해외 거래소에 접속하는 것이다.10 또한, 당국의 감시가 어려운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를 통해 개인 간(P2P) 거래 그룹이 활성화되었다.40 중국 투자자들은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이용해 브로커와 장외거래(OTC)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를 먼저 구매한 뒤, 이 테더를 해외 거래소 지갑으로 전송하여 비트코인 등 다른 암호화폐를 구매하는 다단계 방식을 널리 사용한다.5

채굴 역시 마찬가지다. 대규모 채굴장은 자취를 감췄지만, 소규모 채굴자들이 당국의 감시를 피해 분산된 형태로 채굴을 계속하고 있다는 분석이 꾸준히 제기된다. 2021년 금지 조치 이후에도 전 세계 비트코인 생산량의 약 21%가 여전히 중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추정은 이러한 지하 채굴 활동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41 이는 국가의 전면적인 금지령만으로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 기반의 활동을 완벽하게 통제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2 ’일국양제’의 시험대: 글로벌 허브를 지향하는 홍콩의 역할과 한계

중국 본토가 암호화폐에 대한 굳건한 빗장을 내건 것과 정반대로, 특별행정구인 홍콩은 ’글로벌 디지털 자산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걸고 적극적인 개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13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 아래 본토와는 다른 법률 및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홍콩의 독특한 지위가 이러한 차이를 가능하게 했다.

홍콩 정부는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체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했으며 44, 최근에는 ’LEAP 디지털 자산 정책 2.0’을 발표하며 규제 통합, 토큰화 상품 확대, 인재 육성 등을 포함한 청사진을 제시했다.45 또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대상으로 한 규제 샌드박스를 운영하며 통제된 환경 속에서 혁신을 장려하고 있다.46

홍콩의 규제는 투자자 보호에 중점을 두면서도 시장 친화적인 특징을 보인다. 금융행동특별기구(FATF)의 권고에 따라 강화된 고객확인(KYC) 및 자금세탁방지(AML) 절차를 의무화하고, 고객 자산을 분리 보관하도록 하여 FTX 사태와 같은 거래소 파산 리스크를 줄이고자 한다.47 동시에 암호화폐 거래에서 발생하는 자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등 세제 혜택을 통해 글로벌 자본을 유치하고 있다.47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다수의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들이 홍콩으로 모여들고 있으며, 홍콩은 아시아의 명실상부한 ’가상자산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48

5.3 본토의 우회로 혹은 통제된 실험장: 홍콩을 통한 중국의 이중 전략 분석

본토의 전면 금지와 홍콩의 적극적 허용이라는 상반된 정책은 언뜻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사실 중국의 고도로 계산된 이중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홍콩을 활용하여 본토의 엄격한 자본 통제와 금융 시스템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블록체인 기술 및 디지털 자산 시장의 흐름에서 완전히 고립되지 않으려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49

이러한 전략 속에서 홍콩은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본토 자본과 기업들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제된 우회로’의 역할을 한다. 둘째, 위안화 국제화와 같은 국가적 어젠다를 시험하는 ’규제 샌드박스’이자 ’실험장’의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 역외 위안화(CNH)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크로스보더 무역 결제에 활용하는 실험은 본토의 금융 시스템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위안화의 디지털 활용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46 셋째, 중국 정부가 단속 과정에서 압류한 막대한 양의 암호화폐를 국제 시장에 매각하여 국고로 환수하는 ’청산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45

결론적으로 중국은 홍콩을 ’금융 방화벽(Financial Firewall)’이자 ’프로토콜 변환기(Protocol Converter)’로 사용하고 있다. 홍콩은 본토의 엄격하게 통제되는 위안화(CNY) 금융 시스템과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이라는 두 이질적인 시스템 사이에 위치하여, 양자 간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는 방화벽 역할을 수행한다. 동시에, 역외 위안화(CNH) 기반 스테이블코인과 같이 당국이 통제 가능한 형태로 가치를 교환할 수 있는 프로토콜 변환기 기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중국은 자국 내 리스크는 철저히 차단하면서도, 글로벌 디지털 금융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미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정교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6. 미래 전망 및 전략적 함의: 정책 선회 가능성과 새로운 질서

2021년의 전면 금지 조치가 중국 암호화폐 정책의 최종 결론처럼 보였으나, 최근 몇 년간 감지되는 미묘한 신호들은 정책의 경직성이 완화되고 재검토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의 동력은 중국 내부의 필요성보다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구도와 맞물려 있다. 중국의 미래 정책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글로벌 질서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6.1 규제 재검토의 신호들: 압수 자산의 전략화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태도 변화

전면 금지라는 강경한 기조 속에서도 정책 변화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첫째, 중국 사법부의 태도 변화이다. 중국 대법원이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와 규제 프레임워크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은, 모든 관련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일부 인정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41

둘째, 정부가 단속 과정에서 압류한 막대한 양의 암호화폐 처리 문제이다. 중국 정부는 약 160억에서 190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단순 매각하는 대신 국가의 ’전략적 준비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41 만약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단순한 투기 자산이 아닌, 금과 같은 가치 저장 수단이자 전략적 자산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되어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할 수 있다.

셋째, 고위 당국자의 발언 변화이다. 과거 암호화폐에 대해 일관되게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과 달리,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기존 결제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내며 세계 금융을 혁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16 이는 특정 조건 하에서, 특히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역할을 인정할 수 있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과거의 전면 부정 기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6.2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디지털 자산의 역할

이러한 정책 재검토의 배경에는 심화되는 미중 갈등이라는 거시적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무역 전쟁, 기술 수출 통제, 금융 제재 가능성 등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서 중국은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고 미국 달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38 이른바 ‘탈달러화(de-dollarization)’ 전략의 일환으로 암호화폐가 재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일부 에너지 거래에서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등 미국의 금융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화폐의 잠재력을 시험하고 있다.51 중국이 채굴 금지 조치로 인해 미국의 디지털 자산 산업 패권을 강화시켜준 역설적인 결과를 인식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예를 들어, 중국이 다시 채굴을 허용한다면, 전 세계 채굴 장비(ASIC)의 주요 생산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미국 채굴 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51 암호화폐는 더 이상 단순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선에서 활용될 수 있는 비대칭적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

6.3 중국의 잠재적 시나리오 분석: 현상 유지, 제한적 완화, 전면 재검토

이러한 변수들을 고려할 때, 향후 중국의 암호화폐 정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

  • 시나리오 1 (현상 유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현재의 이중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다. 본토에서는 암호화폐 금지 기조를 유지하며 e-CNY 보급과 확산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홍콩을 통제된 실험장 및 글로벌 시장과의 연결 창구로 계속 활용한다. 이는 내부적 안정과 통제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외부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다.

  • 시나리오 2 (제한적 완화): 지정학적 필요나 기술 경쟁의 압력에 따라 선별적이고 제한적인 형태로 규제를 완화하는 시나리오이다. 예를 들어, 국가가 통제하는 특정 국영 기업이나 연구 기관에 한해 블록체인 기술 개발 및 자산 운용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취급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 혹은, 앞서 언급된 것처럼 채굴 금지령을 해제하여 ASIC 장비 생산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다시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려 시도할 수 있다.51

  • 시나리오 3 (전면 재검토): 미중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거나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는 등 외부의 강력한 충격이 있을 경우, 암호화폐를 국가의 전략적 자산으로 전면 재평가하고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시장을 다시 개방하는 시나리오이다. 압수 비트코인을 공식적인 전략 준비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미래 암호화폐 정책은 국내 금융 안정이라는 초기 목표를 넘어, 미국의 디지털 자산 정책 및 달러 패권의 변화라는 외부 변수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정책은 고정된 원칙이 아니라,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미국의 다음 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전략적 현실주의’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할 것이다.

7. 결론: 통제와 혁신 사이, 중국의 디지털 자산 딜레마

중국의 암호화폐 전면 퇴출은 중앙집권적 국가 시스템이 ’통제’를 ’혁신’보다 우선시할 때 나타나는 필연적 귀결이었다. 본 보고서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이 결정은 금융 주권 수호, 사회 안정 유지, 기술 통제 강화라는 국가의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해 탈중앙화라는 잠재적 위협 요소를 근원적으로 제거하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중국은 암호화폐가 야기하는 자본 유출, 불법 자금 세탁, 과도한 에너지 소비, 그리고 무엇보다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는 본질적 속성을 용납할 수 없었다.

이 과정은 점진적이고 체계적이었으며, 특히 국가 주도의 디지털 위안화(e-CNY) 개발이라는 거대한 청사진과 맞물려 진행되었다. 민간 암호화폐 시장을 소멸시키는 것은,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e-CNY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독점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통제 의지는 예상치 못한 복합적인 결과를 낳았다. 중국의 퇴출은 글로벌 채굴 지형을 재편하여 역설적으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탈중앙성을 강화했으며, 의도치 않게 미국의 디지털 자산 산업 패권을 공고히 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본토의 완전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지하 시장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홍콩을 글로벌 허브로 육성하는 이중적 전략은 중국이 직면한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홍콩은 본토의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는 방화벽이자,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통제’라는 최우선 가치를 성공적으로 관철시킨 것으로 보인다. e-CNY를 통해 디지털 금융의 미래를 국가의 손아귀에 넣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은 중국을 근본적인 딜레마에 빠뜨렸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확장하는 글로벌 디지털 자산 생태계와 격변하는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 속에서, 강력한 통제는 자칫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은 자국 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려는 ’통제’의 욕구와 미래 기술 표준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혁신’의 필요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중국의 다음 행보는 디지털 자산의 미래뿐만 아니라, 21세기 기술 지정학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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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중국 비트코인 채굴금지령 해제 “가상화폐 규제 전면재검토” . : 네이버 블로그, https://naver.me/FO9LdZyD